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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침의 향기 250

산사(山寺) - 김정희 (金正喜)

산사(山寺) - 김정희(金正喜) 앞을 가로지른 고개에 옆을 보니 봉우리들, 그 사이에 내가 있는데 돌아서 굽어보니 지금껏 온 길이 열 길 티끝일세. 돌에 새긴 부처는 오랫만에 사람을 보더니 말을 거는 듯하고 ​산새도 새끼를 데리고 스스로 다가와 친해지네 대나무 그릇에 차가운 물을 받아 차를 끊이고 공양차 그릇에 담긴 꽃은 맑디 맑은 봄이로구나. 힘들어서 눈물을 닦는 그 공부를 누가 다했다고 하더냐! 솔바람 불 때 마다 일만 골짜기가 한번씩 찡그렸다 폈다 하는데. 산사-金正喜(김정희) ​ 側峯橫嶺箇中眞(측봉횡령개중진) : 곁 봉우리 비낀 고개 여기가 진경인데 枉却從前十丈塵(왕각종전십장진) : 길 잘못 들어 헤매던 열 길 홍진 속이었네. 龕佛見人如欲語(감불견인여욕어) : 감실의 불상은 사람보고 얘기 하려는 ..

아침의 향기 2022.07.19

작은 기쁨 - 이해인 / 시인

작은 기쁨 - 이해인 / 시인 사랑의 먼 길을 가려면 작은 기쁨들과 친해야 하네 아침에 눈을 뜨면 작은 기쁨을 부르고 밤에 눈을 감으며 작은 기쁨을 부르고 자꾸만 브르다보니 작은 기쁨들은 이제 큰 빛이 되어 나의 내면을 밝히고 커다란 강물이 되어 내 혼을 적시네 내 일생 동안 작은 기쁨이 지어준 비단 옷을 차려입고 어디든지 가고 싶어 누구라도 만나고 싶어 고맙다고 말하면서 즐겁다고 말하면서 자꾸만 웃어야지 오늘도 작은 기쁨에 감사하며 보냅니다.^&^

아침의 향기 2022.07.19

그 빵집 우미당 - 심재휘

그 빵집 우미당 - 심재휘 나는 왜 어느덧 파리바게트의 푸른 문을 열고 있는가. 봄날의 유리문이여 그러면 언제나 삐이걱 하며 대답을 하는 슬픈 이름이여. 도넛 위에 쏟아지는 초콜릿 시럽처럼 막 익은 달콤한 저녁이 내 얼굴에 온통 묻어도 나는 이제 더 이상 달지가 않구나. 그러니까 그 옛날 강릉 우미당을 나와 곧장 파리바게트로 걸어 왔던 것은 아닌데, 젊어질 수도 없고 늙을 수도 없는 나이 마흔 살, 단팥빵을 고르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, 이제는 그 빵집 우미 당, 세상에서 가장 향긋한 아침의 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네.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것은 이미 이별한 것. 오늘이 나에게 파 리바게트 푸른 문을 열어 보이네. 바게트를 고르는 손이 바게트 네. 그러면 식탁에서는 오직 마른 바게트, 하지만 씹을수록 입 ..

아침의 향기 2022.07.15

연필로 쓰기 - 정진규/시인

연필로 쓰기 - 정진규/시인 한밤에 홀로 연필을 깎으면 향그런 영혼의 냄새가 방안 가득 넘치더라고 말씀하셨다는 그분처럼 이제 나도 연필로만 시를 쓰고자 합니다 한번 쓰고 나면 그뿐 지워버릴 수 없는 나의 생애 그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연필로 쓰기 지워버릴 수 있는 나의 생애 다시 고쳐 쓸 수 있는 나의 생애 용서받고자 하는 자의 서러운 예비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언제나 온전치 못한 반편반편도 거두어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연필로 쓰기 잘못 간 서로의 길은 서로가 지워드릴 수 있기를 나는 바랍니다 떳떳했던 나의 길 진실의 길 그것마저 누가 지워버린다 해도 나는 섭섭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나는 남기고자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감추고자 하는 자의 비겁함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오직 향그런 ..

아침의 향기 2022.07.14

산중에서 은자와 함께 술을 마시며 - 이백

산중에서 은자와 함께 술을 마시며 (山中與幽人對酌) - 이백 (李白) 꽃 피는 산중에 둘이 술자리 벌여놓고 한 잔에 한 잔 다시 한 잔 더 마시는데 내가 취해 잠들면 가도 좋다고 말하면서 뜻 있거든 내일 아침 금을 갖고 오라네 오늘 하루도 즐겁게 즐겁게 ^^ 兩人對酌山花開 양인대작산화개 一杯一杯復一杯 일배일배부일배 我醉欲眠卿且去 아취욕면경차거 明朝有意抱琴來 명조유의포금래

아침의 향기 2022.07.13

칼로 사과를 먹다 - 황인숙 / 시인

칼로 사과를 먹다 - 황인숙 / 시인 ​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.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.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.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. "그러지 마.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데." 언니가 말했었다. ​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. (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)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, 그때 나, 왜 그랬을까······ ​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. (젊다는 건,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.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.) ​ 저도 칼로 자주 사과를 찍어 먹는 사람인데..

아침의 향기 2022.07.12

박연폭포 - 황진이

박연 폭포 - 황진이 한 갈래 물줄기가 하늘에서 떠져나와 골짜기를 숫돌처럼 갈고 용추에서 백 길 되는 물이 용처럼 기어 오른다 흩날리는 물보라는 거꾸로 쏟아지는 은하수인 듯 기세 등등 폭포수에 흰 무지개가 가로로 드리웠네 ​ 흩날리는 우박, 치닫는 우렛소리 골짝에 가득 차고 옥구슬 가루 마냥 푸른 하늘 꿰뚫는구나 나그네여, 중국의 여산폭포만 좋다고 마소 하늘을 갈아내는 이곳이 해동의 으뜸이라오 ​ -박연폭포 / 황진이 一派長天噴壑礱(일파장천분학롱) 한 줄기 긴 물줄기가 바위에서 뿜어나와 龍湫百仞水潨潨(용추백인수총총) 폭포수 백 길 넘어 물소리 우렁차다 飛泉倒瀉疑銀漢 (비천도사의은한) 나는 듯 거꾸로 솟아 은하수 같고 怒瀑橫垂宛白虹 (노폭횡수완백홍) 성난 폭포 가로 드리우니 흰 무지개 완연하다 雹亂霆馳彌洞..

아침의 향기 2022.07.11

한산도 야음 - 이순신

한산도의 가을밤 - 이순신 넓은 바다에 가을 햇빛 저무니 추위에 놀안 기러기 떼 높이 날아가네. 근심스런 마음에 잠 못 이루는 밤 새벽 달은 무심코 활과 칼을 비추네. 閑山島夜吟(한산도야음) 水國秋光暮 (수국추광모) 바다에 가을빛 저무니 驚寒雁陳高 (경한안진고) 추위에 놀란 기러기 떼 높이 나네 憂心轉轉夜 (우심전전야) 근심에 잠 못 들어 뒤척이는 밤 殘月照弓刀 (잔월조궁도) 기우는 달이 활과 칼을 비추네

아침의 향기 2022.07.06

무제 - 충무공 이순신

무제 - 충무공 이순신 대장부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쓰이면 죽을힘을 다해 충성할 것이요. 쓰이지 못하면 농사지으며 만족하리라. 만약 권세가에 아첨하여 뜬 영화를 탐낸다면 내가 부끄러워지리라. 丈夫生世 用則效死以忠 (장부생세 용즉효사이충)·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쓰이면 죽을힘을 다해 충성할 것이요 不用則 耕野足矣 若媚要人(불용즉 경야족의 약미요인 ) 쓰이지 못하면 농사짓고 살면 족하거늘 권세 있는 자에게 竊浮榮 吾恥也 (절부영 오치야) 비위를 맞추어 뜬 영화를 훔치는 것은 나에게는 수치로다. 충무공 이순신이 한 말로 승지 최유해(崔有海)가 쓴 ‘행장’에 기록되어 있다.

아침의 향기 2022.07.0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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